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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야구 투수 역대 평균자책점 순위 TOP 10

by librarysheep 2024. 5. 9.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라이벌 해태 선동열과 롯데 최동원의 퍼펙트게임을 아시나요?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믿기지 않았던 두 슈퍼스타가 펼친 최고의 명승부 등 한국프로야구에는 유독 레전드 투수들이 많았는데요 오늘은 역대 평균자책점 순위 TOP 10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선동열 1.20 

출처= KBO

1963년생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 도산리에서 출생했습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선수입니다. 

주요 개인 기록은 통산방어율이 1.20으로 1986년 0.99, 1987년 0.89, 1993년 0.78의 0점대 방어율을 3차례나 기록했습니다. 리그 MVP 3회, 골든글러브 6회, 트리플 크라운 4회, 방어율왕 8회, 다승왕 4회 등 이루 다 말하지 못하는 역대급 기록과 타이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투수 트리플 크라운은 투수가 단일시즌에 평균자책점, 다승, 탈삼진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할 때 인정이 되는데 선동열은 1989년부터 1991년까지 3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해태타이거즈의 에이스로 6차례 우승에 기여했던 선동열은 한 경기 18개 탈삼진을 기록했고, 8번의 최다 완봉승, 롯데자이언츠 상대로는 20연승을 기록하며 특정팀 상대 최다연승 기록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선동열의 최고 구속은 155km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당시 구장이나 스피드건에 따라 측정값이 들쭉날쭉 했던걸 감안하며 구속은 그 이상이었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직구뿐만 아니라 선동열의 슬라이더는 최동원의 커브, 류현진의 체인저업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 변화구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34세의 나이에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 진출하여 첫 해에는 고전했지만 이후 세이브 1위까지 기록하며 리그 최고 수준의 마무리로 활약하다가 은퇴했습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인 최동원과 연장 15회까지 완투 대결을 펼친 전설의 경기가 있는데요 영화 퍼펙트게임으로도 제작되었는 영상은 아래 바로가기에서 확인하세요.

2. 최동원 2.46

출처=KBO

1958년생으로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북변리에서 출생했습니다. 

선동열과 함께 1980년대 한국프로야구 초창기를 대표하는 투수입니다. 아니 한국 야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롯데자이언츠의 상징과도 여겨지는 선수인 최동원은 롯데 역사에서 최초이자 현재 2개밖에 없는 영구 결번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경남고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투수로 주 구종은 패스트볼과 커브였습니다. 최고 구속은 155km에 이르며 이는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터의 공식적으로 측정한 기록이었습니다.

1983년 롯데에 입단해 1987년까지 5년 간 매 시즌 200이닝 이상을 소화했습니다.

 

최동원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는 연투 능력입니다. 선발로 등판하고 다음날 불펜 등판 그리고 2~3일 뒤 선발 등판이 시즌 내내 이어졌고 1984년 정규시즌에는 페넌트레이스 100경기 중 51경기에 등판하여 284 2/3이닝을 던졌습니다. 롯데 전체 경기 중 과반이 넘어가는 경기에 등판하여 팀의 전체 약 900이닝 중 1/3을 혼자서 던진 겁니다. 

그리고 그해 한국시리즈에서는 7경기 중 5경기에 등판하면서 40이닝 610구를 소화했는데 결국 4차례의 완투와 4승을 홀로 완성한 최동원 덕분에 롯데는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계속되는 연투로 1988년 이후 전성기가 꺾인 최동원은 그해 프로야구 선수협의회 초대 회장직을 맡으면서 롯데 구단과 갈등이 극대화되었고 결국 영원한 롯데맨인 줄 알았던 그는 삼성으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1989년 후반기부터 삼성에서 다시 야구를 재개했지만 예전만 한 구속이 나오지 못하면서 1990년을 끝으로 짧고 굵었는 8년 간의 프로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최동원을 사랑하는 팬들은 단순히 야구를 잘했다는 결과 때문만은 아닙니다. 

철저한 노력파로 술과 담배도 입에 대지 않고 투철한 노력과 집념으로 정상을 밟아온 과정을 알기에 최고의 선수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엄했고, 타인에게 관대했던 그래서 프로야구 최고 스타가 2군 선수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초대 선수협회장직을 맡았던 한국 프로야구계의 큰 별이었습니다. 

 

KBS에서 제작한 최동원 선수를 기리는 영상인 '거인 최동원의 불같은 강속구! 그가 던진 것을 뜨거웠던 인생이었다.'라는 다큐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실력과 인성을 다 겸비한 전무후무한 대투수 최동원선수의 영상을 아래 바로가기에서 확인하세요

 

3. 정명원 2.56

출처=전남매일

1966년생으로 전라북도 군산시 출신입니다. 

군상상고 출신으로 프로에 대한 욕심 없이 실업야구 리그에 취직하려고 했으나 당시 투수난에 시달렸던 태평양 돌핀스가 198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2순위 지명을 하면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데뷔 첫 해 38경기 11승 4패 6세이브를 달성하고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전천후 투수로 활약을 했습니다. 

1994년 본격적인 마무리로 던진 정명원은 그 해 4승 2패 40세이브 달성으로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40세이브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습니다. 

1996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한국시리즈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189cm의 큰 키에서 내리꽂는 패스트볼과 포크볼로 리그에서 위력을 떨쳤습니다. 

 

4. 류현진 2.80

출처=한화이글스

1987년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에서 출생했습니다.

2006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한화이글스에 지명되어 사상 최초의 루키 시즌 크리플 크라운, 신인왕, MVP,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이전 한화 이글스에서의 7 시즌 동안 탈삼진왕 5회, 정규 이닝 최다 탈삼진, 최연소 MVP, 최다 퀄리티스타트 등의 기록을 수립했습니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LA 다저스와 6년 총액 6,173만 달러 계약을 체결하며 메이저리그로 진출했고 데뷔 첫해부터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비록 중간에 구속과 제구력이 떨어지는 적도 있었지만 2017년 재기에 성공하고 2019년에는 아시아 출신 선수로서는 올스타전 선발투수로 등판하기도 했습니다. 

메이저리그 통산 3.2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2024년 한화 이글스와 8년 170억 원이라는 대형 계약을 맺고 국내 리그로 복귀를 했습니다. 

KBO리그 통산 2.80의 평균자책점은 2023년까지의 성적으로 2024년 평균자책점을 합산해야 하는데 구속과 구위가 예전만큼 올라오지 못한 상황으로 통산 평균자책점을 올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5. 구대성 2.85

출처=KBO

1969년 대전광역시 동구에서 출생했습니다.

한양대 입학하자마자 최고의 왼손 투수로 이름을 날리던 구대성은 빙그레 이글스와 한화 이글스에서 활약하면서 투수 4관왕의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1996년 이닝을 가리지 않고 결정적 승부처 위주로 등판해 18승 24세이브 평균자책점 1.88 마무리투수가 다승왕과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구대성은 특히 국제경기 무대에서 강했는데요 2000년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155구 완투승을 이끌었습니다.

2000년 시즌이 끝난 뒤 일본 오릭스에서 평균자책점 2위에 오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4년의 일본 생활 뒤 35살의 나이에 뉴욕 메츠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습니다. 1년의 짧은 빅리거 생활동안 당대 최고의 왼손 투수 랜드 존슨을 상대로 2루타를 뽑아낸 인상적인 모습도 있었습니다. 

한국 야구의 대표적인 마무리 투수였으며 대성불패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6. 최일언 2.87

1961년생으로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습니다.

1984년 OB베어스에 입단하여 프로 첫 해 9승을 올리며 활약했으며 입단 3년 차에는 19승 4패 방어율 1.58로 최고의 성적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최일언은 투구 속도보다는 변화구 구사 능력이 뛰어난 투수로 사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포크볼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크 볼 외에도 상당히 각이 큰 커브, 체인저업, 싱커도 잘 구사했습니다. 

1990년 LG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다가 1991년에는 삼성라이언즈로 트레이드되었다가 은퇴했습니다.

 

7. 박철순 2.95

출처=KBO

1954년생 부산광역시 중구 출생입니다.

1982년부터 1996년까지 OB 베어스 원클럽맨으로 한국프로야구 원년부터 활약한 OB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특히 1982년 단일 시즌 22연승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프로야구 역사상 화려한 기록입니다. 

프로야구 원년에만 성적이 좋았고 그 이후에는 부상으로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심지어 부상으로 1년을 통으로 쉰 기간이 있었을 정도로 내구성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박철순을 좋아하는 팬들은 모두가 선수로서 생명이 끝났다고 이야기할 때에도 불사조처럼 다시 재기에 성공하며 일어나는 모습 때문입니다. 미국에서 두 차례 허리수술을 받고 하반신 마비까지 되었지만 불굴의 의지로 기적처럼 마운드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불사조라는 별명이 생겼습니다. 

 

8. 김용수 2.98

출처=KBO

1960년 서울 출생입니다.

LG트위스의 최초의 영구결번식을 가진 선수이면서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200세이브와 100승을 거둔 선수이기도 합니다. 프로 입단 2년째인 1986년 1점대 방어율에 세이브왕을 차지하면 명성을 얻은 그는 1987년과 1989년에도 세이브 1위를 기록하며 198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팀의 마무리 투수였습니다. 

팀이 LG로 매각된 1990년에 선발로 보직을 전환했는데 12승을 거둠과 동시에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혼자 따내며 팀의 창단 첫해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부상도 있었지만 1998년에는 18승으로 다승왕을 기록하며 최고령 다승왕이 되기도 했습니다. 

 

9. 다니엘 리오스 3.01

1972년생 미국 국적의 선수입니다.

2002년부터 기아타이거즈에서 뛰었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두산베어스 소속 선발투수였습니다.

KBO리그 4년 연속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통산 90승을 거뒀고 두산 이적 후 리그 MVP까지 수상했던 선수입니다. 역대 외국인 투수 누적 WAR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한국 프로야구에 한 획을 그은 외국인 선수입니다. 

그러나 2008년 일본 진출 이후 금지 약물 복용 사실이  밝혀지며 2007년 MVP 기록도 약물 복용에 의한 것이 아닌지 상당한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10. 권영호 3.06

1954년 경상남도 산청군에서 태어났습니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해 삼성 라이온즈 원년 멤버로 활약하였으며, KBO 사상 첫 전업 마무리 투수로 활동했습니다. 속구의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체인지업과 제구력으로 타자들을 요리했습니다. 

통산 기록은 56승 49패 100세이브 방어율 3.06을 찍었습니다.

 

 

이상 역대 평균자책점 순위를 통해 과거의 영웅들과 함께한 순간을 되짚어보았습니다. 류현진 선수처럼 현재 진행형 선수도 있지만 대부분 은퇴를 한 선수들의 기록이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영웅들이 순위에 오르기를 바라면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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